내가 힘들어도 계속 맞벌이, 워킹맘의 길을 선택하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
1.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다시 같은 선택을 하게 되는 이유
워킹맘의 삶은 생각보다 훨씬 버겁다.
하루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끝날 때까지,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일과 육아 사이에서 계속 균형을 맞춰야 한다. 몸이 힘든 날도 많고, 마음이 무너지는 날도 분명히 있다. 그래서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조금 쉬어도 되지 않을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특히 하루가 유난히 길게 느껴지는 날에는 그 생각이 더 강하게 올라온다. 아이에게 충분히 해주지 못한 것 같은 날, 일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한 것 같은 날, 그 사이에서 애매하게 서 있는 느낌이 들 때는 모든 걸 잠시 멈추고 싶어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생각은 오래 가지 않는다. 다음 날이 되면 다시 같은 자리로 돌아와 있다. 다시 출근 준비를 하고,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왜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단순히 일을 해야 하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 안에는 내가 스스로 선택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 일을 하면서 느끼는 작은 성취감, 나라는 사람이 단순히 ‘엄마’라는 역할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감각, 그리고 내가 해내고 있다는 확신. 이런 것들이 생각보다 나를 단단하게 잡아준다.
그래서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결국 다시 이 길을 선택하게 된다.

2.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있기 때문에
워킹맘으로 살아가면서 가장 자주 떠올리는 생각 중 하나는, 내가 어떤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아이에게 항상 옆에 있어주는 엄마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의 일을 해내는 모습도 아이에게 중요한 의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처음에는 그걸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가 나를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지는 걸 느끼게 됐다.
“엄마는 회사 가?”
“엄마는 일해?”
이 질문 속에는 단순한 궁금함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아이의 시선이 담겨 있었다. 그때부터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됐다.
나는 지금 아이에게 어떤 모습을 남기고 있을까. 힘들다고 포기하는 모습일까, 아니면 힘들어도 이어가는 모습일까.
완벽하게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힘들어도 계속 해내는 모습, 때로는 지치지만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꼭 말로 가르치지 않아도, 살아가는 모습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이 길을 쉽게 내려놓지 못한다. 단순히 일을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하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3. 결국은 나를 잃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다
워킹맘으로 살아가면서 가장 크게 느낀 변화 중 하나는, 나라는 사람에 대한 감각이었다.
육아를 하다 보면 삶의 중심이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맞춰진다. 하루의 대부분이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생각도 행동도 아이를 기준으로 움직이게 된다. 이 과정은 당연한 일이지만, 동시에 나를 조금씩 뒤로 밀어내는 과정이기도 했다. 예전에는 내가 좋아하던 것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던 것들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점점 희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느꼈던 감정은 생각보다 컸다. 나는 지금 누구로 살고 있는 걸까 하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리고 그 질문은 결국 일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로 이어졌다. 일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을 넘어서, 나라는 사람을 계속 유지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누군가의 엄마이기 전에, 나는 여전히 나로 존재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선택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었다. 힘들어도 계속 이 길을 가는 이유는, 나를 포기하지 않기 위한 선택에 가까웠다.
워킹맘의 삶은 분명 쉽지 않다. 힘들고, 지치고, 때로는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 길을 걷게 되는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선택한 삶이기 때문에. 그래서 오늘도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된다.